우제길이 시도하고 있는 극적 대비를 통해 어둠과 빛의 드라마틱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한 조형적 방법 이상으로 역사적, 시대적 관계 상황을 은유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빛으로 표상되는 인간 정신의 정화와 물질사회 또는 산업사회의 길항이 흥미롭게 그의 화면에 잠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정신과 물질의 대립과 길항 속에 살고 있다. 우리만큼 그러한 갈등 상황을 겪은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강열한 금속성의 패널이 무수히 겹쳐지면서 폭발할 것 같은 내연의 힘을 품어낸다. 무수히 겹치는 패널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 빛의 존재가 없었다면 화면은 그 강열한 어둠의 힘으로 떠내려갔을 것이다. “한 오라기 빛의 반사가 오히려 화면 전체를 광휘에 찬 빛으로 물들게”(이일) 하지 않았다면 그의 조형은 스스로 그 설 땅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에 빛은 더욱 광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면도날처럼 예리한 금속의 판들이 겹쳐지는 구성은 정교함과 강력한 인자를 내장하면서 화면을 요지부동의 어떤 상황을 암시한다. 여기엔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다. 군더더기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어느 절대의 세계를 지향하는 정신의 항상성만이 존재할 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빛을 예비하기 위한 엄격한 전제 단계이기도 하다. 무수한 금속성 판의 겹침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 빛의 강한 현전을 위한, 또는 빛의 드라마를 위한 무대의 설정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이 있기 때문에 빛의 드라마가 가능한 것이며 빛과 어둠의 교향시가 가능한 것이다. 예감에 찬 조형의 자립이 가능한 것이다.
오광수(미술평론가, 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