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중 ! “미술관에 놀러오다”

지난 10월 개최되었던 운림축제를 관람하고 (중학생들이 만든 작품에서) 기성세대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함과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림축제에 참여한 작품들은 주로 수업시간에 제작된 것으로 미술시간에 2인 1조로 전지 위에 누워있는 파트너의 외곽선을 연필을 이용하여 그린 후 이를 보고 연상된 모습을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여 재미있게 꾸며본다거나, 국어시간에 담임선생님과 학급의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여 벽에 붙여 놓고 보는 전지 크기 학급 신문을 만든 것 들이었다.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Totemism"으로 선사시대 암각화와 고대벽화의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예술가의 최초직업이 주술사였다는 점을 연상케 하는 이 작업들은 작가가 바라는 현대의 토템을 보여주는 듯하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에서 원시에 비할 바 없는 현대의 밀림 안에서, 어쩌면 문명이라는 포장 이면에 존재하는 야만성 때문에 그리고 생명, 자연, 조화 등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개발, 진보, 속도의 끈질긴 폭력성에 의해 외롭고 왜소한 존재가 되어버린 주술사 작가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빨간 돼지 저금통.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사서 어른들이 주시는 돈을 모은 적이 있다. 물론 빨간 돼지 저금통의 조그마한 입구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한 동전은 어린 마음이 학교 근처의 문방구와 슈퍼 앞에서 겪는 갈등과 유혹의 손길에서 벗어난 것들이었다. 요즘 세대는 빨간 돼지 저금통보다 은행에 통장을 만들고 그곳에 돈을 모은다. 어릴 적 한 두 개 정도는 갖고 있었던 이 빨간 돼지 저금통은 이제 그 자취를 조금씩 우리 곁에서 감추고 있다.

일반인들과 미술전공자들에게 다양한 장르의 판화 제작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IMF 이후 위축된 판화계의 활성화와 판화 인구의 저변 확대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우제길 미술관의「국제판화워크숍」이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다.

박형규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별반 관심 없이 지나치는 손톱깎이와 같은 오브제와 제 기능을 다하고 폐품으로 전락한 가전제품의 부속품들을 가지고 로봇, 동물, 사람 등의 형상을 만든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와 슈퍼에 설치된 뽑기 기계들 속의 물건들은 아이들의 순간적 호기심에 의해 기계 밖으로 나오게 되지만, 곧 손에 들어온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식으면서 책상 속 아니면 집안 어딘가에서 뒹굴다가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고 만다.

우제길의 57번째 개인전 제목은 그의 화두인 ‘Light’와 그가 하루 중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미술관과 작업실 주소의 번지수(數)인 647의 결합으로, 우제길 미술관에서의 그의 전시의 한부분인 오픈 스튜디오의 성격을 그대로 드려내고 있다. 예술가가 작업하는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작가는 그곳에 독특한 공간을 창조한다.

작가 초기 작품의 태고의 어둡고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 가득한 세상을 빠르고 날카롭게 스쳐지나가는 섬광 같은 빛이 아닌, 우리를 포근하고 안정감 있게 감싸 안는 따뜻한 빛으로, 눈부시게 만드는 빛의 강렬함을 원초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얇은 베일에 의해 가리어진 빛이다. 이러한 빛은 인류의 황금기 같은 희망찬 미래와 상승을 예시하고 있으며, 새로운 생명의 태동을 알리는 에너지로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우제길 미술관은 그의 평면과 입체 작업 등을 총괄하는 총체적 의미의 현재 진행형 작업으로, 그의 삶과 예술이 살아서 숨 쉬는 장소이다. 이 공간에서 만나게 될 그의 작업은 일상적으로 예술작품을 접하는 미술관과 갤러리와 같은 화이트 큐브의 전시공간에서 만나는 작품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감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평면작업이 만들어낸 빛과 색의 공간과 건축적 성격의 작업인 미술관과 아틀리에라는 공간에 잠기게 될 것이다.